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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길상과 한복의 대화 본문

합의된 공감

<토지> 길상과 한복의 대화

레니에 2018. 4. 7. 21:59


"그 말 할 줄 알았다."


"누굴 탓하는 건 아닙니다. 내 아버지의 탓을 뉘보고 원망하겄십니까.

사람대접 못 받는다고 해서 나는 아우성도 칠 수 없었십니다. 통곡도 못해 보았십니다. 할 수 없었지요.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이니께. 형님, 나는 이대로가 좋십니다." 



(…)



"사내자식이… 누가 너더러 일하라 했냐! 하면 좋겠지… 고양이 손도 빌리고 싶은데.

그러나 아무도 네 목덜밀 잡고 끌어내지는 않아. 마음이 가야 발이 가고… 크게는 독립이다, 크게는 말이야.

그러나 옛날로 돌아가자는 독립은 아닌 게야.

두메산골에 가서 나뭇짐을 지더라도 가난하고 사람의 대접을 못 받는 이치를 알아야 할 거 아니냐 말이다!


너의 가난과 너에 대한 핍박을 너의 아버지 너의 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네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네가 없다는 것은 죽은 거다.

아니면 풀잎으로 사는 거다.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너의 아버지는 너 한사람을 가난하게, 핍박받게 했지만 세상에는 한 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수천만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핍박받게 하고,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말이다!


지금 당장 목전의 원수는 일본이지만, 따라서 너의 형도 목을 쳐야겠지만,

제발 일하라 않겠으니 숨지만 말아라, 너의 자손을 위해서도.

너의 아버지의 망령을 평생 짊어지고 다니다가 너의 자손에게 물려줄 작정이냐 말이야!"



<토지 3부 1권 중. 나남출판>








한복은 형(김두수)과는 다르게 선한 아이였다.

그는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뒤집어쓴 채 성장하지만 타고난 선함을 잃지 않는다.


한복에게는 나라, 즉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이 누구이든 모멸과 가책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는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에게는 거시적 안목으로 현실을 판정하기보다는 

제 식구들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상실했으니까.



길상은 그런 한복을 아무런 사심 없이 연민하고 사랑한다.

독립운동자금 운반책이라는 수단이나 나라의 독립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한복이 과거의 멍에로부터 독립하기를 응원한다.


왜냐면 길상 그 자신도 서희와의 결혼생활 동안 과거의 신분 차이에서 비롯된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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