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관리 메뉴

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서의돈의 말 본문

합의된 공감

<토지> 서의돈의 말

레니에 2018. 4. 10. 09:59

 

 

"쓸개 빠진 놈들은 3·1운동 때문에 왜놈들이 혼비백산하여 유화정책을 쓰게 됐다면서

뭐 하나 따낸 듯 말하지만 어림없는 소리, 총칼보다 그놈의 유화정책이라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어.

 

(…)

 

생각해보아,

총칼로 죽이느니보다 산송장을 만드는 것이 얼마만 한 이득을 가져오느냐를.

 

 

첫째, 백성들의 분노가 손실된다.

일본에 대한 분노보다 매국노, 반역자, 친일분자에 대한 분노가 더 강한 것은 자네도 알 만한 일이 아니겠나?

 

백성들의 분노는 힘이야.

힘을 분열시키는 것은 정복자들의 금과옥조야.

 

둘째, 매국노, 반역자, 친일파, 그런 자들도 있는데 내가 하는 일쯤, 하고 백성들 양심에도

타협의 소지를 마련하거나 또 힘이 약화됨을 느끼며 체념하는 것으로써 그나마 나는 깨끗하다는 자위에 빠져버린다.

 

(…)

 

내 살림 내 것으로, 참 좋지. 그보다 이상적인 것이 또 어디 있을꼬?

민족자본의 육성, 그 얼마나 번듯한 얘긴가.

 

(…)

 

그러나…어째 왜놈이 문틈을 만들어주겠나, 만들어주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

 

하여간 머지않은 미래에 필연적으로 부딪칠 사태를 생각하여 불리한 조건, 영세한 자본인 조선기업가들에게

물산장려운동을 계기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젖줄을 물리면서 방패로 삼으려는…… 내 생각이 극단일까?

과연 극단일까?"

 

 

<토지 3부 2권. 마로니에북스>

 

 

 

 

 

 

 

 

 

물산장려운동의 한계와 이면을 꿰뚫는 서의돈의 말이다.

 

그는 주권 없는 나라의 물산장려운동이란 결국 빈곤한 대중의 희생을 발판 삼아

탄생할 또 다른 형태의 경제적 불평등에 불과함을 예견하면서

그 운동이 결과적으로 민족의 부가 아니라 일본과 친일파의 이익에만 부합할 것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실 우리 근현대사는 일본이 물려놓은 젖줄을 꽉 움켜쥔 자들이 주도했다.

 

그렇게 성장한 친일파들은 일본의 이익을 다른 모든 가치보다 우선시하며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앞장섰다.

 

그들은 해방 직후 친일파를 단죄하려는 '반민특위'를 반공을 내세워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도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견제를 이념을 내세워 방어한다.

 

우리는 친일파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실은 친일파의 변명과 논리를 언론 등을 통해 더 자주 들으며 알게 모르게 그들에 동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때의 친일파는 사라지거나 위축되지 않고 더한층 진화해 지금은 그 어떤 공격도 막을 수 있는 이지스 방패까지 가진 셈이다.

 

 

친일파는 부국강병과 애국을 말했다.

마치 습관인 듯 독재자도 마찬가지.

세상의 본질은 변화인데, 이데올로기를 장려하는 그 우렁찬 구호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유혹한다.

소설 형식을 빌려 들어본 90여 년 전 서의돈의 일갈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주 당연한 현실이 됐다.

 

 

 

 

 

 

 

 

 

 

 

 

 

 

 

 

 

 

 

 

 

 

'합의된 공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지> 석이의 단상  (0) 2018.04.11
<토지> 복동네의 죽음  (0) 2018.04.11
<토지> 용이와 홍이의 대화  (0) 2018.04.08
<토지> 길상과 한복의 대화  (0) 2018.04.07
<토지> 임이네  (0) 2018.04.0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