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석이의 단상 본문
하늘에는 은하가 뚜렷하게 흐르고 있었다.
석이는 비극적인 복동네 죽음이 묘하게 희극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봉기에 대한 증오감조차 묘하게 절실치가 않았고, 사람의 사는 모습들이 모두 광대(廣大)만 같다.
무궁한 곳에 무궁한 은하가 흐르는데-.
(…)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치민다.
산다는 것이 통곡인 것만 같아.
오뉴월, 커가는 새끼를 먹이려고 야위어진 까치 생각을 한다.
봉기 늙은이도 그 야위어지는 까치 한 마리였다는 생각을 한다.
강물이 희번득인다.
밤에도 쉬지 않고 흐르는 강,
세월의 눈금도 없이 흘러가고 있다.
오만하고 냉정한 젊은 여자같이 강물은 혼자 흐르고 있다.
(…)
미워할 수가 없었다.
한 철을 사는 나비가 부드러운 속잎을 찾아서 알을 까는 일이며,
파헤쳐진 흙더미 속에서 알을 먼저 피난시키는 개미며,
벌레 중에는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수컷이 있다던가.
석이는 문뜩 그 신비한 조화(造化)를 생각한다.
도시 본능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토지 3부 3권 중>
사람이 제 형편에 따라 쏟아내는 말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줏대 없다.
아무리 허물 없이 살기 힘든 게 사람 살이고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 세상이어도
사람이 본능에만 갇히지 않기에 짐승하고 구분되는 게 아닐까.
먹고사니즘에 집착하는 본능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의미를 가진다.
윤보 목수와 봉기는 다르고 길상과 두만이도 구별돼야 한다.
마음 독하게 먹고 선하게 사는 사람과
독종 '동탁'은 엄연히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 기준조차 다 무시되고 분별마저 희미해진다면
세상엔 배고픈 개돼지와 배부른 개돼지와 제 편한 자리만 고집하는 고양이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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