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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숙이 본문

합의된 공감

<토지> 숙이

레니에 2018. 4. 16. 17:59

 

"참꽃(진달래)술도 그게 기침에는 영약인디."

 

이불을 개켜낸 자리에 걸레질을 하는 숙이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방바닥에 떨어진 눈물 자국을 걸레질로 지우며,

영산댁에게 등을 보이며 구석지를 닦는다.

 

(…)

 

천만병을 고친다는 진달래술.

아비의 병이 천만은 아니었지만 목에서는 항상 가래가 끓었고 끊임없는 기침,

기침의 끝에는 피를 토하곤 했었다.

 

봄이 되면 더욱 기침은 심해졌고 피를 토하는 도수도 잦았다.

봄마다 봄 넘기기 어려울 것이란 말을 들어야 했었다.

 

(…)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었는가 솥뚜껑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솥전에 떨어져 피식피식! 물방울 튀는 소리가 난다.

숙이는 치맛자락을 걷어 콧물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 눈물을 닦고 더운물을 퍼내어 걸레를 빤다.

 

<토지 4부 1권 중>

 

 

 

 

 

 

춘궁기가 아니어도 살길이 막막했던 아비는 

딸 목숨이라도 살리고자 숙이를 주막에 남겨놓고 떠난다.

오가는 사람 많은 주막, 그 인연의 토양에서 딸의 삶이 어떻게든 움트길 바랐다.

 

지금 숙이는 제 설움에 겨워 울지 않는다.

남겨진 딸은 두고 간 아비의 심중을 헤아리며 그 아비가 그리워 울고

생사를 알 수 없는 동생 생각에 밥 지을 때마다 서럽다.

 

 

서러움도 어렸을 때 미리 당겨쓰면 그 총량이 줄어들까.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딸을 남기고 간 아비의 한.

남겨진 딸의 한.

풀 길 없는 숱한 한을 안고도 기어이 생존할 여린 생명을 작가는 주모 영산댁 입을 빌려 위로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안 서럽울 사람이 있을까마는,

귀밑머리도 못 푼 어린것이 죽어 이별, 생이별을 다 겪었으니 그 가심의 못을 어느 뉘가 뽑아줄 것이여?"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보면 봄은 마냥 좋아서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고 시를 읊는다.

그 봄 역시 야속하게도 짧아 마음에 환희와 함께 일시적 결핍을 불러오지만,

보릿고개를 넘는 곡절에 비하면 하찮다.

 

 

밥 때문에 핏줄과 헤어진 숙이가 밥을 짓는다.

속 끓이는 숙이가 주막에서 밥 지을 때마다 먹는 건 울음 한 덩이.

숙명에 맞서 딛고 일어서려는 한 생명이 행여 속울음 들킬까 서둘러 바닥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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