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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된 공감

<토지> 송영광과 이홍의 대화

레니에 2018. 5. 2. 22:59



"하지만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지요. 솔직하게 말입니다.

저는요, 송관수 김길상 그분들을 우러러 받들 만큼 어리지도 않고 자신을 기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독립이 될 거라는 달콤한 꿈도 꾸지 않습니다.

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애국애족, 독립을 논하지 않으면 순 날건달로 치부하지만요,

소위 운동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그 실체 이상으로 침소봉대(針小捧大)해서 감격하고 찬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자기 만족 같은 것 아닐까요?


그것은 환상, 일종의 환상이며 기만입니다.

마른자리에 앉아서 손뼉만 치고, 그러고는 말 없는 사람을 비난합니다.

과연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요?"



(…)



"영웅호걸, 위대한 애국자, 신출귀몰하는 의인, 사실 그런 게 있습니까?"



(…)



"보지도 못한 하나님을 만들어내고 귀신을 만들어내고 영웅을 만들어내고 왜들 그러지요?

사람답게 못 사는 한풀이입니까?


왜 사람들은 남들에게 이런저런 옷을 입히기를 좋아하는 거지요?

아름다우면 추하게 입히려 하고 추하면 아름답게 입히려 하고,

반대로 아름다우면 더욱더 천상적(天上的)으로 꾸미려 하고 추하면 더욱더 지옥으로 만들려 하고,

진실은 어디 있습니까?

온통 빈껍데기 빈껍데기만……."



<토지 16권. 5부 1권 중>










냉소와 회의가 짙게 밴 송영광의 말에도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다.



그러나,

삶은 실천이다.

관조가 아니라 참여다.


세상이 아주 느린 속도로 조금씩 변하는 것도 숱한 실망을 껴안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뭐라도 하는 외로운 몸뚱이들 때문이다.


살면서 누군들 실망을 맞닥뜨리지 않았을까.


하여 홍은 영광에게 일갈한다.

'달콤한 꿈이 없어서 인정 안 하려는 자네와 달콤한 꿈을 꾸지는 않으나 목숨을 거는 사람, 그 차이점 때문이다'라고.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작가도『토지』를 완성하는 데 25년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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