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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본문

잡담 or 한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레니에 2020. 12. 29. 16:39

1.

오십 대인 가수 강산에 씨가 수능을 막 끝낸 청소년들에게 노래를 들려준다.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아이들은 설레면서도 부모가 챙겨주는 안락한 삶을 떠나야 해서  
뭔가 모를 불안감과 책임감이 안개처럼 깔리는데,

자기가 몸담은 분야에서 산전수전 두루 겪었을 강산에 씨가 부르는 노래는 그에 대한 격려로 들린다.

 

 

 

 

 

2.

나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온통 부동산과

돈 얘기 뿐인 한국에서 나잇값 하는 어른으로 살려면

가슴에 열정보다는 매우 정밀하게 작동하는 계산기를 지녀야 한다.

 

 

 

 

 

3.

내가 만약 강산에 씨처럼 어른들의 치열한 생존경쟁 속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을 만났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태어나면서 이미 재능과 부모의 경제력 등 기본값이 차이가 나는 아이들에게

'넌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인생역전을 호언장담할까.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오로지 부동산 천국뿐이라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에 올인하는 신앙을 불신하면 지옥을 경험하게 될 거라며,

서둘러 부동산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은 인생 노하우를 설교할까.

아니면은 가난과 독재를 극복한 우리 세대가 제시할 수 있는 전망은 사실

부동산 밖에 없다며 무능력을 고백하고 자책할까.
어느 쪽이든 쑥스럽고 미안하다.


 

 

 

4.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청년 김군은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한 컵라면을 남기고 훌쩍 떠났다.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하고 출근하고,

놀고 싶을 때 놀지 못하고 일하면서도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임금을 겨우 손에 쥔다.

시작이 미미하면 끝도 미미한 세상이라 어떻게든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취업하려 하지만

출근 경험조차 잡기 힘들다.

그사이 구의역 김군의 죽음을 모욕한 후보자는 장관이 되었는데,

조금만 몸에 이상이 생겨도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갈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은

'그러니까 억울하면 공부해서 출세하라'며 죽음을 대놓고 조롱한다.




 

5.

그런 '헬조선'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죽지 않고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낸다.
세상에는 분명 드라마틱한 성공신화가 있지만 그 또한 참 대단한 일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상황과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한 달 서른 날을 버텨 월급을 받고,
구명동의조차 없는 망망대해에서 무려 1년 동안 사력을 다해 헤엄쳐 생존했다면,

한 해 노력한 보상으로 연말에 상을 받아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연예인들처럼

스스로 자신을 격려하고 갈채를 보낼 자격이 있다.


 

 

 

6.

인생에는 여러 단계가 있으니 이 노래가 영상 속 친구들에게는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른들도 살면서 갑작스런 급류를 만날 때마다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는 어른들에게도 그런 노래가 간간이 필요하다.

 

희끄무레한 달빛 아래 실낱 같은 길이 보여도 그 길은 멀고 조심스럽다.

혹여 발을 잘못 디디면 몸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기성세대 누군가는 다음 세대에게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사롭거나 공허한 말로써가 아니라, 천신만고 끝에 고작 죽음에 이르는 연어처럼

다음 세대에게 그가 살아온 인생으로 그 실천을 증명하고,

갈피를 못잡을 때 이정표가 되는 점잖으면서 유쾌하게 나이든 어른이,

그런 문화를 유산으로 남기려 애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면 좋겠다.

 

 

 

 

 

7.

내년에 나는 또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

그것이 다 채워지지 않을 때 나는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다 주는 따스함의 문제'라고 어딘가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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