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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오징어채 안주 삼아 칭따오 무알콜 맥주 마시며 "원소의 왕국"을 읽는다. 책 표지에 구멍이 뚫려있다. 세상을 이루는 핵심 요소인 원소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 같다. 내가 사는 세계의 내부도 서로 부딪치고 달라붙어 알갱이를 이룬다. 그러다 분리, 붕괴한다. 한낱 물질에 불과한 나의 몸과 사람이 쌓은 업적은 마침내 흔적도 없이 흩어질 것이다. ↓애피타이저 같은 머리말을 맛보려 첫 숟갈을 뜨는데 그만 돌을 씹은 듯하다. "원소의 왕국의 안내서." 역자가 굳이, 혹은 무심코 곁들인 "의"에 그만 탈이 났다. 글을 다루는 전문가조차 조사 "의"를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남용한다. 원소의 왕국 안내서. 별 의미 없는 "의"는 덧붙이지 않는 게 낫다. 그 다음 문장도 어딘가 이상하다. "나는 서머셋 몸의 「진노의 그릇」..
잡담 or 한담
2023. 5. 21. 21:10
초승달에 절하다
배신월(拜新月) 초승달에 절하다 이단(李端) 開簾見新月 卽便下階拜 개렴견신월 즉편하계배 細語人不聞 北風吹裙帶 세어인불문 북풍취군대 발을 걷어 초승달 보자마자 계단을 내려가 절하였습니다. 나지막한 말은 들을 이 없고, 북풍만이 치마끈을 날리었습니다. 초승달은 낮에 떠서 일찍 진다. 그 달이 아주 넘어가기 전에 여인은 아무도 모르는 틈에 커튼 같은 발을 걷고 나선다. 각자의 사연 일일이 말하자면 길 터인데 시는 짧다. 묵언 수행하듯 눈과 귀만 열어두는데, 서늘한 바람만이 여인의 꼭꼭 동여맨 속내를 슬며시 들춘다. 나는 한 생애가 저 여인의 외출 같다 여긴다.
잡담 or 한담
2023. 5. 15. 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