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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부산서 출발한 KTX가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한 무리의 사람이 올라 타자 열차 안 분위기가 금세 달라진다. 디테일을 가차 없이 뭉개거나 생략한 트럼프의 단문 같은 짤막한 언어가 동대구역에 도착하기 전과는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도통 눈치도 없이 자기 할 말은 다하고 보는 그들은 말을 툭툭 내던지는데, 그들의 말과 행동은 걸리거나 막힘이 없지만 승객들은 파김치처럼 톡 쏘는 자극성이 강한 억양에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자리를 잡은 그들은 저렴한 섬네일과 언어를 마구 쏟아내는 정치 유튜브를 이어폰도 없이 보더니 여러 사람 들으라는 듯 단호하게 내뱉는다. "문재인 그 개**는 감옥에 가야 돼!" 어느 편에 선 사람들의 편협한 주관성과 옹졸한 일관성이 벌이는 처연한 소동에서 나는 내가 사는 세..
1. 유럽에 가면 야트막한 산이나 언덕 꼭대기에 우뚝 솟은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저만 잘났다고 툭 튀어나온 것도 같은 성당 첨탑을 흔하게 보았다. 크로아티아의 '로빈(RovinJ)' 같은 경우도 그러한데 시간이 차곡차곡 축적된 듯한 풍경은 여행자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2. 서울에도 비슷한 풍경이 있다. 한남대교를 강북 방면으로 걸어 건너다보면 왼편으로 한남 뉴타운 3구역이 보인다. 여기가 과연 서울인가 싶은 그 동네는 불특정 다수의 가난이 봄 산 진달래처럼 혼전만전 피어났다.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등 다양한 인종과 국적 없는 가난이 모여 살고 교회와 이슬람 사원이 마을을 이뤘는데, 최근 재개발 시공사가 선정되어 철거를 앞두고 있다. 3. 골목길은 갈피 없고 사방 경사가 가파르다. 저리 헐거운 건물..
#1 카메라 둘러메고 재개발 예정 구역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낡은 다세대주택 외부 계단을 오르는 택배기사가 보인다. 자기 등짝보다 더 큰 짐을 지고 2층을 지나 3층으로 오르던 그가 갑자기 주저앉더니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일어나지 않는다. 몇 분이 흐른 뒤 그는 무슨 결심이라도 선 양 1층으로 내려간다. 짐 두 개 그곳에 더 있다. 그는 심한 교통 체증에 걸린 차량처럼 느리게 느리게 나머지 짐을 마저 옮긴다. 그 풍경을 흐지부지 지켜보는 나는 점심을 커피 한 잔으로 건너뛰었는데도 뭐에 체한 듯 속이 답답하다. 아무래도 아무나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쯤 건네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 #2 전날 주문한 통영 굴이 도착해서 굴국을 보글보글 끓였다. 갓김치 담글 때 짠맛 순화용으로 넣어둔 무 조각을 꺼내 물에 헹구..
고창 선운사에 다녀갑니다. 꽃무릇 미치도록 핀 여기 선운사, 정면 아홉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큰 누각 만세루에 앉아서 보는 대웅전과 백일홍이 끝내주지요. 감탄은 속으로만 했습니다. 말이 말 같지 않은 시대이니 입은 다물고요.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치아바타를 더 맛있게 만들어 먹을까만 궁리합니다. 만세루의 서까래와 대들보, 기둥, 툇마루는 삐뚤빼뚤합니다. 목수가 수없이 만지작거렸을 하나같이 못생긴 부재들이 세상의 부자연스러운 하중을 지탱하고 무지근한 허무를 버텨냅니다.
1. [후추] 후추는 검은 황금으로 불렸다. 향신료 후추는 천 년이 넘도록 동서양에서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쌌다. 조선시대에도 후추는 대단히 귀했다. 선조 20년, 일본서 도요토미가 조선을 염탐하러 보낸 사신이 왔다. 당시 조정은 연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일본 사신 다치바나가 일부러 후추를 꺼내 술좌석에 뿌려대자 벼슬아치와 기생, 악공들이 앞다퉈 후추를 줍느라 연회장이 난장판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를 참칭하는 정치 모리배와 언론, 벼슬아치들이 일본이 고의로 슬쩍 매운맛을 흘리기 바쁘게 엎드려 기어다닌다. 2. [중경삼림] 영화 에서 왜 그리하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데 그녀 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너무 소심하게 변해버렸다. 레인코트를 입을 땐 늘 선글라스를 쓴다. 언제 비가 올지 언..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며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와 게재한 경향신문 등을 민주당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그 칼럼은 한 개인의 편협성과 언론사의 정파성이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물이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안철수 씨 정치 세력화에 참여한 이력을 가진 그녀가 SNS에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과는 다르게 언론 게재 칼럼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 그러나 다름을 응원하진 못하더라도 이해는 하자. 공직선거법 위반이 분명하고, 자신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나치게 확신한 그런 글에 비위가 뒤틀리더라도, 그것까지도 민주주의다. 그것 없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모름지기 그런 기묘한 주관을 대범하게 인정하는 상식과 교양이, 가짜와 무도한 선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지킨다. 칼럼..
CJ 이미경 부회장의 수상 소감에 대해 말이 많네. 언젠가 봉 감독이 말했어. 결혼하고 생활이 곤란할 때는 대학 동기가 쌀을 가져다줘서 살았대. 한때는 너무 힘들어서 자살까지 생각했다더군. 그런 그를 누가 구했을까, 예술? 아니 그에게 투자한 투자가와 자본이었일 거야. 재능만으론 안 돼. 예술가가 밥벌이에 매달리지 않아야 더 좋은 작품이 나와. 먹고 살 길이 보이지 않아서, 오로지 먹고사는 데에만 함몰되면 사람도, 상상력도, 작품의 풍요성도 위축돼. 고흐나 이중섭은 가난해도 예술혼을 꽃피웠지 않냐고? 그래서 그들은 일찍 죽었지. 가난해서. 예술이 자본을 이끄는 게 아니라 자본이 예술을 견인해. 돈이 봉 감독에게 창작 동기를 부여하고 그의 예술성을 현실에서 구체화하듯, 잉여 자본이 문화를 만드는 거야. 스..
숙명여대 사건은 페미니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나 차별받았어요!" "나 힘들었다고요!" "상처받은 내 맘 좀 알아달라고요!" 등의 정서를 육화하며 공론의 장을 만들었다.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낸 사람들 덕분에 가부장제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치부가 드러났다. 반면 페미니즘 담론이 폭증하면서 정체 모를 분노가 페미니즘의 외피를 입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예리한 흉기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일부 극단 페미니스트들의 미러링이 확산하더니 이젠 모두를 향해 나도 힘들었으니 너도 차별받으라며 혐오한다. 여성만이 가장 큰 피해자이고 약자라고 전제한, 자기 설움에 과잉 몰입한 이들이 전혀 정량화할 수 없는 그 감정만으로 판단을 내려 폭력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러는지 ..
진중권 씨가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는다면서도 최근 자신의 행위는 '부패한 친문 측근들'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도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부패한 집단권력에 맞서는 비범한 개인, 즉 투사로 셀프 격상하는 목적에 충실했다. 못된 인간들이 그런다. "다 너를 위해서 그런다고. 사랑해서 때린다고." 윤석열 총장도 언제는 자기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더니 대통령에 대한 충정은 변함없다고 언론플레이를 했다. 말은 복잡해도 본질은 단순하다. 다 행위와 결과로 드러난다. 진중권 씨는 자신이 오랜동안 "국이"라고 부르던 친구 가족에게 행하는 폭력을 정의와 결기로 포장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지나치게 자신만을 향하고, 자기 존재 증명 강박에 갇히는 일인칭 언어는 타인을 가..
세상 일은 척 보면 다 안다는 듯 떠드는 진중권 씨는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그는 종편 패널과 보수 언론서 현 정부 공격용으로 활용되지만, 사실 진중권 씨는 그 자신이 몹시 무시하는 김어준 같은 영향력이 1도 없다. 그가 경쟁심을 느낄 유시민 작가처럼 베스트셀러를 연달아 써내지도 못한다. 조국 교수처럼 언제든 돌아갈 명문대 정교수 자리도 없다. 그렇다고 힘들 때 잘 뭉치는 '문빠'같은 지지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나의 주관적인 가정은 아무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그의 주장처럼 미천하기 짝이 없다. 김어준 씨는 주류가 주도권을 거머쥔 세상에서 오로지 자기 힘으로 새로운 언론 유형을 만들었다. 그는 전통언론의 비아냥 속에서 청취율 1위 프로그램을 일구며 현실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