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잡담 or 한담 (56)
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1. 정상급 선수가 골문으로 쇄도하면 수비수 3명이 우르르 몰려가 앞에서 가로막는다. 다른 선수 3명은 그를 따라 잡기 위해 헐레벌떡 전력 질주한다. 2. 탑클래스 선수는 존재감만으로 상대 수비수를 끌어와 자기편에게 공간을 만들어준다. 예닐곱 명에 둘러싸여도 자기가 가진 공을 침착하게 통제하며 기회를 엿보다 완벽한 타이밍에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힘 빼고 툭 어시스트. 지켜보던 상대 팀과 응원단 모두 맥이 빠진다. 3. 그동안 한국 대표팀이 강팀을 만나면 우왕좌왕 딱 그랬는데, 이번에는 손흥민 선수가 호날두가 뛰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그런 장면을 선보였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 손흥민 개인의 위상이자 손흥민이니까 가능한 장면이지만, 우리팀도 그동안 많이 컸다. 4. 세상의 평가에 속거나, 누군가 만든 관..

1. 겨울 시작을 알린 '입동'은 15일 전이었다. 지금부터 15일이 지나면 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이고, 오늘은 첫눈이 내린다 하여 '소설'. 소설(小雪)에 소설(小說)을 읽는다. 문학의 무쓸모를 안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겨울 채비 바쁜 시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설 나부랭이를 읽으려 다른 일을 서두른다. 2. 는 유시민 작가가 추천했는데, 소설에 잠시 동안 시간 주고 돌려받는 기쁨이 상당히 크다. 작가는 발랄한 유머와 경쾌한 문체로 웃음을 자아낸다. 자칫 늘어지기 쉬운 무거운 주제를 농담처럼 가볍게 슬쩍 꼬집는다. 역시 유시민 작가를 싫어할 수는 있어도 그의 안목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3.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한다. 이념이 쇠퇴하고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양식이 크게 달라졌다. 그럼에도 세상..
총리 나이가 몇인데 젊은 기자들 앞에서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그따위 짓을 하나. 영어 잘하고 한국어 실력도 출중한 미국인 타일러 씨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던데, 총리도 윤석열 면전에서만큼은 한국어만 골라 쓰겠지. 영어도 어중간, 한국어도 어중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체성은 두루뭉술. 내놓고 잘난 체도 유분수지, 에라 이 한심한! ↓안팎으로 새는 바가지, 볼 때마다 민망하고 망신스럽다. 사람 됨됨이 모자라고 행동거지 무례하고 경솔한 대통령은 청약통장을 모를 정도로 세상물정에도 어둡다. 홈에서는 안하무인 방구석 여포인데, 밖에만 나가면 강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우리 국격도 윤석열처럼 구석에 쳐박혔다. 소통령, 이인자로 불리는 한동훈 씨는 국회에서 빠득빠득 대들지. ..

1. 오늘 아침 기온 18도. 벌써 다 지난 일이지만, 소낙성 강수 잦은 여름이었다. 처음엔 여름 가뭄 씻는 그 빗소리 반가워 한밤중에도 깨어있었지. 얼음땡 하는 아이처럼 앉아 혼자 있는 시간이 위로가 되었어. 그 시간도 차츰 지나니 나머지 비는 골머리 앓는 홍수일 뿐이고, 한 해 농사 망치는 재난으로 바뀌더라. 비 오시길 기다리다 해갈 되면 비가 멈추길 기다리는 변덕은 여전히 오락가락. 아무 데도 가기 싫은 아침인데 날씨가 헤벌쭉 웃으며 지랄이네. 2. 어제 운동량이 지나쳤는지 팔다리가 뻐근하고 뼈마디 저리는데, 날씨가 저 모양이라 쉬고 싶은 몸 따로 나다니려는 생각 따로 마음이 어수선하다. 일단 오전에는 서재에서 소설 을 읽으며 페이지 넘기듯 간간이 뒤척여야지. 김훈 씨의 글은 미문이지만 기름지지는 ..

엄마가 늦은 밤 단톡방에 "ㄷ" 한 글자를 남기셨다. 실수였다. 얼마 후 카톡을 열어본 며느님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재치로 "ㄹ"을 남기고, 고3 조카도 공부하다 말고 슬며시 "ㅁ"을, 중딩 조카는 살포시 "ㅂ"을 달았다. 말하는 족족 배꼽 웃음을 피우는 재주를 가진 막내아들은 그들로부터 먼 데서 "ㅅ"을, 나는 뒤늦게 전화로 엄마 안부를 확인하고 "ㅇ"을 내밀었다. 날이 밝으면 또 엄마의 자식임을 낱낱이 드러내는 낱소리가 이어지겠지.

"안물안궁". 그러니까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시겠지만, 이사했습니다. 미리 계획한 이삿날이 토요일이어서 어제 이전 신청을 했습니다. "지금 주문이 밀려 있으니 조금 기다리세요." 라고 할 줄 알았는데 웬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로켓배송하듯 불과 5분 만에 이전 완료 메일이 왔네요. 인스턴트 메신저에서 '대화창 나가기'하면 관계가 끝나듯 "DAUM" 포털과의 결별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블로그 주소는 https://mistymemorys.tistory.com/ 바뀌었습니다. 기존 주소와 닉네임은 사용 불가였어요. 새 닉네임은 "레니에"입니다. 로맹 가리의 소설 에 나오는 약간 덜떨어진 남자 이름입니다. 그는 번잡한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카페를 차리고 열정과 허무 사이에서 허송세월 하다가 어느..

"원균이라는 사람은 원래 거칠고 사나운 하나의 무지한 위인으로서 당초 이순신(李舜臣)과 공로 다툼을 하면서 백방으로 상대를 모함하여 결국 이순신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일격에 적을 섬멸할 듯 큰소리를 쳤으나 지혜가 고갈되어 군사가 패하자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와 사졸들이 모두 어육(魚肉)이 되게 만들었으니 그때 그 죄를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한산에서 한 번 패하자 뒤이어 호남(湖南)이 함몰되었고 호남이 함몰되고서는 나랏일이 다시 어찌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시사를 목도하건대 가슴이 찢어지고 뼈가 녹으려 한다."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년) 1. 우리 역사상 최악의 빌런을 꼽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인 '원균'과 '명성황후'. 그들을 옹호하거나 비호하는 정신..

1. [어떤 산수] 인심 써서 세전 연봉 3000만 원이라 치자. 그 저임금 노동자의 연봉이 불황과 구조조정을 이유로 30% 삭감되었다면, 연봉은 3000-900=2100. 만약에 업황이 호전되어 연봉 2100 노동자로 전락한 그가 임금 30% 인상 요구를 관철한다면, 2100+630= 2730. 수년 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빼고도 한 사람의 연봉은 3,000에서 2,730으로 10% 가까이 줄었다. 삭감과 인상 산식에 공통 적용한 숫자 30%. 그러나 손에 쥐는 결괏값은 판이하다. 2. [이념병을 앓는 조선일보가 정신을 잃고 중얼거리는 말]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사태가 끝났다. 노조의 임금 30% 인상 요구는 고작 4.5% 선에서 합의됐다. 조선일보는 "임금 4.5% 더 받자고 8100억 ..

1. 놀이 삼아 사진을 찍었다. 순간을 길게 보는 재미를 즐겼다. 그 취미는 신이 나서 뛰어들던 돈벌이만큼이나 삶을 가뿐하게 굴리는 열량이었다. 다음 블로그가 사라질 시간이 다가온다. 셧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풍경을 보며 있는 것 모두 본래 없던 것이었다고 느꼈다. 그럴듯한 포장지 빈번히 쓰레기가 되어도, 블로그 있어 여름비 마음에 젖어들듯 메마른 틈새를 메꿨다. 2. 바짓단 다 젖도록 쏟아붓던 비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한 이튿날, 슈퍼문 뜬대서 오밤중에 달마중하였다. 세상 물정에 컴컴한 설익은 사람 머리 위로 꾸김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천진난만한 얼굴이 쌩긋이 웃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온 노래 들으며 세상의 복잡 미묘함 속에 떠도는 당신과 나의 위치를 가늠하다가 연..

1. 애플티비로 "파친코"를 보았다. 보다 제작비를 4배 정도 쏟아부었다는데 역시나 재능과 자본이 결합할 때 볼만한 결과물이 나온다. 나는 굵직한 줄기보다는 드라마가 소설에서 인상적이던 장면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했다. 2. 일테면 '양진'이 딸의 결혼예배가 끝나자마자 선자 부부에게 하얀 맨쌀밥을 밥그릇 미어지게 담아 먹이기 위해 시장 쌀가게로 내달려 쌀 한 봉지에 매달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소설은 그 장면으로 일제강점기의 수탈을 곱씹으며,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 생계와 생존에 연관되어 응어리진 한(恨), 그리고 부모 됨의 기쁨과 슬픔을 그렸다. 3. 지금은 김치밖에 모르던 시절이 아니고 외려 흰쌀밥이 푸대접 받는 시대다. 사람들은 쌀을 주식으로 한 식단을 덜 선호한다. 쌀밥은 건강을 해치는 그릇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