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잡담 or 한담 (56)
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1 포털에는 온종일, 아니 1년 365일 실시간 교양 없는 언론의 그림자가 분노와 절망을 생산한다. 검찰과 언론 등 요사스러운 무리들이 요란한 말과 복장, 몸짓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없는 일 있는 일로 둔갑하고 작은 일 불려 크게 말한다. 경쟁에 지치고 나이 먹어 무거운 이들의 공허한 마음을 트로트가 유혹한다. 고난 끝에 황제에 오른 유비와 같은 드라마가 필요한 시청자들은 자신이 무명가수를 스타로 만들어내는 듯한 재미를 즐긴다. 그 사이 조중동과 종편은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윤석열 영웅' 만드느라 바쁘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요물이자 독극물인 조선일보는 급기야 관상까지 들먹이며 왕 만들기에 나섰다. 가히 샤머니즘 시대로의 퇴행을 보는 듯하다. #2 엄마가 배추김치 한통을 보냈는데 뚜껑을 열자마자 남..
1. 윤석열 씨가 사퇴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치 중립을 지켜야 할 권력기관 공무원의 사직이 약을 팔려는 약장사의 쇼처럼 떠들썩했다. 아마도 그는 지난해 총선 전에도 그랬듯이 다가오는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날 대구를 무슨 출정식 하듯 요란스럽게 방문했는데 역시나 마지막까지 사사롭고 정치적이었다. 2. 총장 재임기간 내내 윤석열 씨는 거칠고 엉뚱했다. 조국 씨처럼 손봐주리라 벼른 사람은 막강한 검찰권을 동원해 일가의 인격과 인생을 짓밟고, 김학의 씨처럼 봐주고 싶은 사람은 사건의 본질보다는 도피를 막은 공무원을 범죄자로 내몰았다. 3. 그는 꼼수에도 능하고 염치가 없다. 재소자를 겁박해 없는 죄를 만들어낸 검사를 감찰하려는 임은정 검사를..
차들이 폭설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나보다 재빨리 현명한 친구는 엉금엉금 기어 새벽 두 시에 겨우 귀가했다는데 나는 나사 하나 빠진 놈처럼 입 헤 벌리고 눈구경을 하였다. 그 언젠가 한 부스스한 사랑이 생각나서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 사랑만으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걸 몰라서도 아니고, 그냥, 함박눈 오는 날엔 원하는 순간에 적시타 터지듯 "눈이 나리네"라며 읊조리는 타이밍이 좋아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첫 발자국 새기는 이 노래 듣는 멋 있어야 겨울이다 싶어서. 벚꽃 흩날리는 날 봄볕 오래 쐬듯 함박눈 맞았다. 잔사설 그만두고 눈 수북이 쌓인 밤길을 걸었다, 보드득 보드득 보드득.
1. 이낙연 씨가 정초에 난데없이 사면론을 들고나왔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씨만을 콕 찍어 구제해 주자는데, 나는 새해 첫날부터 궂은소리를 들은듯 기분이 언짢았다. 서울대 출신 후배들에게만 유난히 다정하고 다른 이에겐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더니, 그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보다는 제 마음에 근거해 선별하는 일을 좋아하나 보다. 2. 재난지원금도 홍남기 씨와 손발을 척척 맞춰 선별지원을 고집하더니 뒤늦게 내놓은 대책은 한심스러웠다. 방역 전쟁에서 누군가는 안전한 후방에 있고 누군가는 보급이 끊긴 최전방에서 독박을 쓰고 있다. 3. 코로나19 방역은 의료진 덕분이다. 또한 여러 사람이 흘리는 피눈물의 대가이기도 하다. 의료진은 명분과 보람을 얻고 얼마간의 보수라도 받지만, 소상공인, 특수고용직, 고용취약..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오규원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중 전문 1. 온갖 이야기들이 모여 내 이불속으로 쑤욱 기어들어 오는 밤이 있다. 그들이 꼼지락거리고, 흐뭇하게 웃고 떠들다 문득 얼굴이 찌푸려지는 희미한 기억을 선명하게 되살리면 낯이 뜨겁다. 2. "나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돈 몇 푼에 치사해지고, 팔은 안으로 굽고..
1. 오십 대인 가수 강산에 씨가 수능을 막 끝낸 청소년들에게 노래를 들려준다.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아이들은 설레면서도 부모가 챙겨주는 안락한 삶을 떠나야 해서 뭔가 모를 불안감과 책임감이 안개처럼 깔리는데, 자기가 몸담은 분야에서 산전수전 두루 겪었을 강산에 씨가 부르는 노래는 그에 대한 격려로 들린다. 2. 나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온통 부동산과 돈 얘기 뿐인 한국에서 나잇값 하는 어른으로 살려면 가슴에 열정보다는 매우 정밀하게 작동하는 계산기를 지녀야 한다. 3. 내가 만약 강산에 씨처럼 어른들의 치열한 생존경쟁 속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을 만났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태어나면서 이미 재능과 부모의 경제력 등 기본값이 차이가 나는 아이들에게 '넌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인생역전을 호언장..
1. 법관이 증거와 법리에 근거해 판결해야지, 왜 반성과 양심을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실체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양심과 반성에는 믿을 만한 구석이 전혀 없어서 증거와 법리를 따진다. 그것이 법치다. 판사는 징역 4년에 법정구속을 선고한 후 정경심 씨에게 '소감'을 물었다는데, 나는 그 행태가 법원과 검찰에 만연한 극단적 자기 중심성과 공감능력 결여, 반 사회적 행위를 일삼으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소시오패스적 특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2. 사극에서 탐관오리가 다짜고짜 "네 이년!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윽박지르는 광경이 떠오른다. "저 년을 매우 쳐라!"라고 차마 발화하지 못한 속엣말도 들리고. 그런데 이 나라의 지엄한 사법부는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하며 아동 ..
어제는 입이 써서 홍합 국물에 소주를 마시고 싶었다. 술 담배 끊은지 십수 년이라 하는 수 없이 연신 커피만 마셨다. 검찰과 법원에 똬리를 튼 독사들의 수사와 판결은 징그러워서 소름이 돋고, 치사하고 졸렬해서 헛웃음이 나왔으나 법비들이 꺼내 보인 강렬한 살의만큼은 연쇄살인범의 범행 현장을 보듯 섬뜩했다. 그 와중에 득달같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말 잔치판을 벌이며 거나하게 취한 얼굴로 횡설수설 되는대로 지껄이는 언론과 진중권 씨 같은 사람들도 보았다. 그들의 살의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엊그제 만난 목련나무는 벌써 속을 단단히 채운 꽃눈을 만들고선 동짓날을 사뿐히 뛰어넘었다. 목련나무는 허름한 부엌에서 자식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던 어머니처럼 때맞춰 꽃을 날래게 피워낼..
1. 주 3회 하던 스피닝을 1주일 내내 했다. 스핀 바이크를 고강도로 미친 듯이, 뜨겁게 탔더니 허벅지는 딴딴해졌는데 어제는 몸이 하루 종일 께느른하였다. 무릎도 시큰해서 나는 만사를 제쳐 두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럴 땐 '잠'만이 심신기능 저하상태에 빠진 나의 전부를 바꿔놓는다. 나는 불을 끄고 수면안대를 하고 누웠다. 곤히 잠든 고양이. 모로 누워 자다가 무슨 꿈을 꾸는지 앞발을 몇 번 꼼지락거리다 아예 넘늘어진 개처럼,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도 깨질 수 있는 연약하면서도 견고한 평화 같은 단잠을 잤다. 2. 새벽에 일어나선 여느 때처럼 커피머신 고압펌프 작동음으로 정적을 깨고 되직한 스파게티에 물을 조금 부어 걸쭉하게 만들지만 그 농도는 묽지 않게 조절한 음악을 듣는다. 모차르..
1. 코로나 덕분에 12월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각자의 피치 못할 사정에도 시간만큼은 흐지부지 흘렀다. 며칠 전 새벽에는 눈이 왔고, 나는 어둠 속에서 커피머신으로 한때의 잔상을 녹여 사진이나 글로 추출하듯 에스프레소 두 번, 룽고를 한 번 내려 마시며 새벽 특유의 정감에 덜미를 잡힌 채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두 번 들었다. 2. 한 번은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한 음반이었고 두 번째는 로저 노링턴의 지휘에 귀를 기울이며 어스레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음악 문외한인 나는 지휘자의 자리바꿈에 따른 음악의 인상 변화를 확연하게 느꼈다. 유명 지휘자들의 해석보다 템포가 빠른 그들의 지휘가 빚은 소리는 귀를 거쳐 가슴속까지 흘러들었다. 그 소리는 맹렬한 기세로 대양을 헤엄치는 참치처럼 질주하였고, 어느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