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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늘 내비를 켜놓고 다녔다. 익숙한 길도 내비가 없으면 불안할 만큼 길들었으니까. '좀 쉽게 살아가자' 생각했었다. 캐롤은 내비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북극성을 믿었다 길을 찾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식은 비슷해서 스마트 폰이나 내비게이션을 활용한다. 그러다 문득, 내비도 믿을 수 ..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는 영화를 선택할 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인 것처럼. 다우트는 연극 등을 통해 이미 알려졌지만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비올라 데이비스의 열연을 보는..
사랑은 우리를 한계 가까이에 데려다준다. 조제가 호랑이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 한계가 두려워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한계를 넘기도 하지만 멀리 가지 못했더라도, 한계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물고기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기..
봄은 마치 아는 듯, 아주 필요한 순간에 온다. 그래서 봄 마중은 설렌다. 스르르 잠들 듯한 포근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왠지 호사 같은 봄, 이 봄에는 칙칙한 겨울옷의 무게를 덜어내듯 밝고 경쾌한 이야기만 골라 듣거나 보고 싶다. 좋아하는 배우인 '다이안 키튼' 때문에 보게 된 영화에..
"여기를 넘으면 인간 세계의 비참함, 넘지 않으면 이 몸이 파멸."기원전 49년,공화정을 수호하려는 원로원에 맞서 정치체제를 개혁하려던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며 한 말이다.역사에서 늘 위대한 인물로 조명되는 그다운 언변이다.그로부터 약 1,900년 후의 일본,메이지 유신을 앞둔 ..
마음을 위한 일에는 항상 몸의 역할이 있다. 몸이 기댈 데도 마음밖에는 없다. 아무리 인정머리 없는 세상이라도 자신이 쓰러지는 걸 방치하는 자기란 없기에, 겪고 사는 일 다를 바 없는 모든 꽃 봄 되면 새 꽃 밀어 올리고, 사람은 마뜩잖은 몸뚱이 곧추 세운다. 이미 써먹은 '언젠가는'..
사는 일은 눈 많은 겨울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머물기에는 시리고 추우며 아련한 통증까지 안긴다. 그 한철을 용케 버티는 데 가장 넉넉한 것은 타인의 호의가 아닌 자기 주머니에 자기 손을 넣는 일이다. 끙, 소리 한마디 없이 웅크린 채 눈을 맞는 훌륭한 개가 그러하듯, 산목숨들이 지상에 예비해 놓아야 하는 거처는 자기 체온이 유일하다.
"마지막 종이 울릴 때까지는 서 있어야 해, 챔피언의 펀치를 견디며. 사각의 링은 사사로운 핑계 없이 한 사람이 상대가 아닌 그 자신과 먼저 싸우는 곳이야. 행운의 펀치도 자세를 추스려 상대를 향해 한 발 다가설 때 가능한 것이지. 언제나 죄를 짓는 쪽은 변명이었지 실패가 아니었어. 후회는 패배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다리 풀린 너를 다시 괴롭힐 거야. 15회만 버티면 돼. 다행히도 그러면 끝나...록키처럼."
Fernando Botero Angulo, , 2000, oil on canvas , 185x122cm. "왜소한 나에게 있어 진정한 왜곡은 그림이 아니라 세상에 있다." 이렇게 요구한다. 더 좋은 것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더 좋은 것이. 그래서 가늠한다, 해도 좋은지 아닌지. 하지만 그림에는 부정과 거부가 없다. 꼿꼿하지도 단단하지도 않다. 반쯤은 족히 썼을 세월과 능력, 너끈히 평균은 넘을 몸과 삶의 무게, 그래도 말석에 앉아 망설이는 몰락보다는 낫다. 길은 여럿, 방법도 여럿, 눈 감았으니 엿보지 않고 내맡긴 스텝 게으른 법 없이 목마른 자는 취해야 산다. 왜소한 나에게 있어 진정한 왜곡은 그림이 아니라 세상에 있으니, 춤을 추기 위한 손은 사람 쪽으로 굽어야 하고 다가서 손 내밀고 잡아..
Rene Magritte, <The Lovers >,1928 , oil on canvas , 54x73.4cm. 그들은 서로를 오해한다. 눈이 가릴 때 의지할 것은 자신의 상상력뿐, 사랑이 어떤 기분이 되는지는 다만 그것에 달려있다. 사람은 자기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나는 그대를 잘 알고 있다'는 오해로 시작해서 '나는 그대를 잘 몰랐다'는..
비로소 도착했다. 뉴허라이즌스호가 명왕성을 탐사한 테이터가 지구로 전송되는 데는 5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전파(電波)가 전파(傳播)되는 속도를 고려하면 그 거리가 아득하다. 하지만 둘 사이에 가로놓인 열악한 환경과 거리에도 불구하고 탐사선과 지구는 정확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 우주 저편에 비하면 심각한 방해물 하나 없는 동일한 세상에 있지만 진심이란 전파는 전진할 수 없어 전파되지 않고 반대쪽 진심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이에 카톡 1이 사라지는 시간이 때로 명왕성보다 멀다.
길에는 그를 눕히려는 은밀한 심술이 가득 누워있는데, 벤츠 옆을 지나는 삼천리 자전거 제 앞가림한다. 어떤 희망을 싣고 있는지, 내가 모르는 곳에 당신의 희망은 따로 있는 것인지 빈약한 수단으로 위험을 방어하며 나아간다. 누군가는 삶의 중심으로 한달음에 달려가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그 무대에 끝내 다다를 수 없을 테지만 각별히 조심하여 당신은 끝내 다치지 마시라. 한 번 넘어져 생긴 어떤 상처는 겉으론 멀쩡하지만 끝내 속병이 되기도 하고, 세상은 쓰러져 실패한 듯 보이는 자들에겐 동정심이 많지가 않으니. 구시렁 ⓒ 박대홍
1은 2진법 논리가 적용된 세상에서 절반의 규모를 차지하는 수다. 1을 1에 곱하면 1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수에 1을 곱하면 1이 아닌 그 수 자신이 된다. 1 다음으로 큰 자유수는 2다. 개별적 존재 1이 대립면을 경험할 때 만나게 되는 2는 첫 번째 소수이자 유일한 짝수다. 합성수 중에서 처음으로 모든 약수가 홀수뿐인 수는 9다. 9는 한 자리로 쓸 수 있는 가장 큰 수다. 10처럼 다른 것과 묶이지 않은 채 한 자리로 쓸 수 있는 마지막 수, 자신을 보존하고, 자신임을 승인하는 최후의 수다. 살아있는 것들이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빈방에 돌아와 홀로 눕는 일처럼 그만 저를 놓고 싶은 심사에도 불구하고 숫자 하나 더하듯 이유 하나 덧붙여 살고자 하는 지점.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열어두려는 경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전제를 말하지 않아도, 모든 시대에는 논리적 오류와 구조적 모순이 있는 것 같다.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개인에게서도 비슷한 결함이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발견되는 사실은 그 시대와 개인의 진실이 아니라, 관찰자의 기준에만 부합하는 사실일 수도 있어서 ..
George Clausen,<Youth Mourning>,1916,Oil on Canvas,914×914㎜. 이 생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보호할 무언가를 입는다. 그러나 그림이 간추려낸 것은 오직 빈몸, 그녀는 다만 필사적이다. 사는 것과, 참는 것에서. ⓒ 박대홍 저 여인도 언젠가는 회복되겠지, 지금이 아닐 뿐.
살면서 주야장천 들어온 사랑이라는 말, 참 진부하고 성가신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체념하게 되는 많은 것들 중에 사랑도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사랑 또한 감정적 대가를 지불하는 불안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그런 이유로 사랑을 포기하거나 과소평가하며 사는 것은 더 힘든 일이겠지요. 한 시대가 아니라 바다가 사막이 되는 유구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라도 할 것처럼 유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할 땅을 비웃듯, 더는 무엇을 기대하기 힘든 사막을 벗어나려는 듯. 그러나 그들은 격추되고 맙니다. 지상에서 구성한 촘촘한 이념, 도덕, 국경이라는 화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겨우 살아남았지만, 살기 위해 애쓰지 않는 이 ..
<본문에는 영화 결론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권위적인 제복과 평상복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신분의 위계처럼 신체조건마저도 확연히 구분되는 두 남자, 영화는 이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심연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며 시작됩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자기 의..
박지혜,<Regard 0906>,2009. 캔버스에 유채,145.5 x 97.0cm. 몸은 꿈쩍도 못 하는데 마음은 어디서 서성이는지. 드러나 보이는 속옷처럼 속마음도 어렴풋이 비치는 것 같다.. 무심코 창 쪽으로 고개 돌리듯, 사는 일은 균형없이 한쪽으로만 쏠리기도 하지. 지나고 보면 잠깐이었고, 아무것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