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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민족의식이란 가지가지 낯판대기를 지닌 요물이야. 악도 되고 선도 되고 야심의 간판도 되고 약자를 희생시키는 찬송가도 되고…… 피정복자에게 있어서 민족의식이란 항쟁을 촉구하는 것이 될 테지만 정복자에게 있어서의 민족의식이란 정복욕을 고무하는 것이 되니 말씀이야. 민족의식, 동포애, 애국심, 혹은 충성심, 따지고 보면 그것들은 인간 최고의 도덕이면서 참으로 진실이 아닌 괴물이거든. 집단 생존본능이요 집단의 탐욕을 아름답게 꾸며대는 허위, 어디 민족이나 집단뿐일까? 일가에서 개인은 어떻고? 결국 뺏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투쟁 아니겠나?" 옷이 날개다. 온갖 것을 치장하고 돋보이게 하는 형식미처럼 옷이 없다면 눈 둘 데 없이 그냥 민망하고 뻔한 몸뚱이만 남는다. 그것으로는 서로 차이를 만들거나 우열을 가릴 수 ..
최초엔 길상을 잃었고, 다음엔 상현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스스로를 버린 기화는 또 버림받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잃었고, 마지막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망각한 것이다. 도망은 상실과 망각에서 오는 일종의 충격일까. (…) "봉순아! 니 어디 갈라꼬 여기 또 왔노!" 길상과의 이별이 봉순에게는 중심의 상실이었는지 모른다. 전참봉, 서의돈, 그 외 어정쩡하게 맺은 무의미한 인연들. 중심에서 멀어진 순간부터 어쩌면 봉순에게 삶은 잡다한 것이 되어버렸다. 서희는 아편에까지 손을 대 피폐해진 봉순이를 평사리로 돌아가도록 배려한다. 용정에서의 싸늘한 만남과는 달리 서희는 그녀를 가련히 여긴다. 서희는 길상이 투옥된 충격 속에서도 봉순과 그녀의 딸을 거두지만 봉순은 이미 인생을 지..
"차가운 빙하 같았던 생애. 먼곳에서 찬란하게 빛을 내던 사람들, 인생은 보석의 빛이 결코 아니요 뿌옇게 타오르는 모깃불, 목화씨 같은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발자취는 순전히 역행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 환이는 자신의 생애가 성인의 길이 아니었음을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투쟁과 방랑과 애증(愛憎)과 원한의 가파로운 고개를 넘은, 평지가 오히려 발끝에 설었던 오십 평생은 마음과 몸이 피로 물들었던 것처럼 격렬했었다. 환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인지 그것을 생각한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게 여장을 다 꾸려놓고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그 얼마 남지 않았을 시간에 열리지 않을 벽을 두드려본들 무슨 소용인가. 눈을 감은 채 환이 싱긋이 웃는다." "그 꽃 따서 화전을 만들어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하늘에는 은하가 뚜렷하게 흐르고 있었다. 석이는 비극적인 복동네 죽음이 묘하게 희극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봉기에 대한 증오감조차 묘하게 절실치가 않았고, 사람의 사는 모습들이 모두 광대(廣大)만 같다. 무궁한 곳에 무궁한 은하가 흐르는데-. (…)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치민다. 산다는 것이 통곡인 것만 같아. 오뉴월, 커가는 새끼를 먹이려고 야위어진 까치 생각을 한다. 봉기 늙은이도 그 야위어지는 까치 한 마리였다는 생각을 한다. 강물이 희번득인다. 밤에도 쉬지 않고 흐르는 강, 세월의 눈금도 없이 흘러가고 있다. 오만하고 냉정한 젊은 여자같이 강물은 혼자 흐르고 있다. (…) 미워할 수가 없었다. 한 철을 사는 나비가 부드러운 속잎을 찾아서 알을 까는 일이며, 파헤쳐진 흙더미 속에서 알을 먼저 피난시키..
동네에서 비명에 간 여자가 함안댁과 복동네만은 아니다. 미친 또출네는 불길 속에서 죽었고, 삼월이는 물에 빠져 죽었으며, 귀녀는 형장(刑場)에서 죽었다. 그러나 맑은 정신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함안댁과 복동네는 매우 비슷했다. (…) 타작마당은 마치 신풀이 한풀이의 장소로 변해간다. 상대가 심술궂기로 이름난 봉기였고, 안좋은 꼬투리는 대개 한두 개쯤 갖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고소해하고 한층 신이 나는 모양이다. 말뚝같이, 송곳같이 복동네 심장을 때려박고 찌르지는 않았다손 치더라도 뒤꼍에서 바늘 하나쯤은 복동네 심장에 꽂았을, 그런 위인일수록 이상하게 남보다 분개하고 규탄하고 처단하자는 주장이 강했으니. 그것도 양심인지 모를 일이다. 남의 말을 즐기는 입은 늘 무책임하다. 그들은 남을 위해 손을 내..
"쓸개 빠진 놈들은 3·1운동 때문에 왜놈들이 혼비백산하여 유화정책을 쓰게 됐다면서 뭐 하나 따낸 듯 말하지만 어림없는 소리, 총칼보다 그놈의 유화정책이라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어. (…) 생각해보아, 총칼로 죽이느니보다 산송장을 만드는 것이 얼마만 한 이득을 가져오느냐를. 첫째, 백성들의 분노가 손실된다. 일본에 대한 분노보다 매국노, 반역자, 친일분자에 대한 분노가 더 강한 것은 자네도 알 만한 일이 아니겠나? 백성들의 분노는 힘이야. 힘을 분열시키는 것은 정복자들의 금과옥조야. 둘째, 매국노, 반역자, 친일파, 그런 자들도 있는데 내가 하는 일쯤, 하고 백성들 양심에도 타협의 소지를 마련하거나 또 힘이 약화됨을 느끼며 체념하는 것으로써 그나마 나는 깨끗하다는 자위에 빠져버린다...
"홍아." "예." "니하고 나하고는 시작도 못하고… 내가 늙어부린 것 겉다." 홍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무엇을 시작해 보지도 못하였는가 잘 알겠기 때문이다. 부자간의 정의도 나누어보지 못하고, 그리고 죽을 날이 가까워왔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 "니는 이곳에 정이 안 들 기다. 그라고 니가 이곳에 있어 머하겄노. 얽매이서 사는 것은 내 하나로 끝내는 기다. 니 뜻대로 한분 살아보아라. 내 핏줄인데 설마 니가 나쁜 놈이야 되겄나." "아, 아부지이!" 중풍으로 쓰러진 이용(龍)이 평사리로 돌아왔다. 아들 홍(弘)이를 데리고 선영에 간 용이는 생모에 대한 증오와 젊은 날 자신이 안팎으로 표출한 갈등과 분노에 상처 받아 비뚤어져 가는 홍이에게 얽매여 사는 것은 그 자신으로 끝나야 한다고 말한다. 인연이라..
"그 말 할 줄 알았다." "누굴 탓하는 건 아닙니다. 내 아버지의 탓을 뉘보고 원망하겄십니까. 사람대접 못 받는다고 해서 나는 아우성도 칠 수 없었십니다. 통곡도 못해 보았십니다. 할 수 없었지요.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이니께. 형님, 나는 이대로가 좋십니다." (…) "사내자식이… 누가 ..
임이네는 본시 죄의식이 엷은 여자다. 죄의식을 가지라는 것도 실상 어거지였고 칠성이의 죄명 탓으로 모든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만 것을 그는 날벼락으로 생각했고 재앙이라 생각했으며 부부로서의 정신적인 유대를 갖지 못한 만큼 고난과 슬픔과 또한 기쁨까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비춰주는 대로의 반응일 뿐이었다. 고마운 척, 눈물겨운 척할 수 있는 교활한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넘쳐흐르는 생명력, 조금만 땅이 걸고 짓밟지만 않으면 무섭게 자라나는 잡풀 같은 생명력은 교활한 지혜를 위해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 눈에 그가 거들먹거리는 것같이 보였다는 것은 윤씨부인이 도와준다거나 먹고 입는 것이 자기네들과 같아졌다는 시샘 때문에 그렇기도 하려니와 그 무성한 생명력에..
두 사람은 시작부터 달랐다. 본토발 열차가 홍콩에 도착할 때 자다 깬 남자는 허둥대지만, 여자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길을 찾았다. 두 사람은 시작부터 같았다. 아전인수의 기대를 들고 홍콩과 서로에게 발을 들여놓았다. 삶에는 언제나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현실에 순응하는 것과 ..
"노인은 어디서 오는 길이라?" "어디랄 것 있소, 조선 팔도 뜬구름같이 다니니." "객지바람을 많이 쏘였으면 아는 것도 많겄소이." "아는 게 뭐 있겠소 그저 인심을 알 뿐이지." "그란께로, 인심을 안다면 아는 거 아닌게라우? 그래 워디가 젤 인심이 좋습디여?" "젤 좋은 곳이 어디 있겠소. 오..
눈은 싱겁게 멎어버리고 하늘은 개기 시작했다. 길가 삽짝 앞에 강아지 한 마리가 오돌오돌 떨면서 앉아 있었다. 석이 그 앞을 지나친 뒤 강아지는 우우 하고 짖어보다가 그것도 싱겁게 그만둔다. 우물가에는 아낙이 보리쌀을 씻고 있었다. 소매 끝을 걷어 올린 두 팔뚝이 빨갛다. 석이는 ..
'나는 누굴 위해 비단옷을 입었나. 내 가장 내 자식 등을 덮기 위한 길쌈이라면 주양장천 긴긴 밤도 길지 않을 것을.' 세월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지나간다. 사람들, 흘러가버린 사람들, 남아 있는 사람이 지나간다. 무리를 지어가는 얼굴들, 그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지나간다. 외롭게 홀로..
"임자." 얼굴 가까이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떤다. 머리칼에서부터 발끝까지 사시나무 떨듯 떨어댄다. 얼마 후 그 경련은 멎었다. "임자." "야." "가만히," 이불자락을 걷고 여자를 안아 무릎 위에 올린다. 쪽에서 가느다란 은비녀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임종을 앞둔 월선과 용이의 마지막 대화다. 월선은 소설 의 소화처럼 무당의 딸이다. 천한 신분이라는 오로지 그 이유로 용이와 맺어지지 못했다. 소화가 고문을 받아 유산하는 고통 속에서도 하염없이 정하섭..
한참 동안 말없이 걷다가 영팔이 입을 연다. "나는 니가 온다니께 이자는 살 성싶으다. 우떡허든지……." "……." (…) "멩이 붙었다고 머 고마울 것 하낫도 없다. 윤보형님은 그렇기 잘 죽었지. 죽을 때 말마따나 육신을 벗어던지고 훌훌 잘 날라갔지 머." 사십이 넘은 두 사내는 별빛을 밟고 주거니 받거니, 헤어질 줄 모르고 간다. 서로의 마음에 친구 이상의 것이 짙게 흐르고 있다. 한 살갗 한 피 같은 것이, 여자에 대한 그리움과는 또 다른 그리움, 그것은 서로를 통하여 고향을 느끼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향, 어쩌다가 고향을 잃었는가. 간도로 피신한 용이와 영팔이가 헤어지는 장면이다. '고향'이란 단어가 단순한 지명으로 읽히지 않는다. 우려할 일은 고향을 떠나온 게 아니라 다른 유형의 고향을 상실한..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 희망이 일렁이는 금녀 가슴에는 뜻하지 않았던 조바심이 아프게 저 바다의 파도가 방천을 치듯 쉴 새 없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빼앗길 그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겐 불안이 없다. 지금 금녀가 가져보는 앞으로의 자기 운명에 대한 기대와 흥미가 과연 희망적인 것인지 그 어떤 실마리도 잡아보지 못한 채 방향도 알지 못한 채 악몽 속에 허덕여온 여자는 희망 그 자체를 겁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어쩌면 금녀에게는 절망 그 자체가 삶이었었는지 모른다. 순간 불꽃 튀기듯 뻗치어온 절망과의 대결, 그 긴박한 찰나 찰나가 삶의 증거였었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서러움이나 근심이나 불안은 절망의 덫으..
"도시 은혜란 뭡니까? 양반들 먹고 남은 찌꺼기를 던져주는 게 은혭니다. 상놈 노비들은 먹다 남은 찌꺼기를 얻어먹으면서 감지덕지 은혜를 받는 게지요. 나는, 나는 말입니다. 돌아가신 마님을 그렇게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괴팍한 서방님도 그렇게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서방님은 어린 ..
병풍은 양면을 다 쓴다. 회갑 때 축수의 용도와 축하연에도 쓰고, 제사와 초상 때에도 사용한다. 병풍은 접거나 펼 수 있다. 2폭에서 12폭까지 그 길이가 가변적이다. 때론 까마득하고 널리 어중간하다. "삶과 죽음의 거리가 2.5센티" "젖 먹던 입부터 숨 거두는 콧구멍까지도 병풍 두께 2.5센티"라고 이정록 시인이 썼다. 빛과 어둠, 남과 여, 사랑과 이별, 안과 밖, 삶과 죽음, 동전의 양면처럼 멀어 보이는 것들이 실은 가장 가깝게 붙어있다.
그녀와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페이스가 흐트러지는 것과 페니스가 흐물거리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영화는 아무도 오래는 머물지 않는 공항에서 불일치를 드러내며 시작한다. 불특정 소음이 가득한 곳에서 여자는 남자를 부르지만 방금 도착한 남자는 자기 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릴 뿐 여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유리벽이 있어서 볼 수는 있어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는데, 이혼과 불리의 불가피성이 그렇게 남자와 함께 나타난다. 아무튼 남자는 당연하게 따라 나올 줄 알았던 수화물을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영화는 과거를 뜻하는 타이틀을 자동차 와이퍼가 지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와이퍼는 바깥에서 작동한다. 예측하지 못한 날씨처럼 삶도 내부보다는 낯선 것들이 가득한 외부에서 삐걱대고 부딪히고 돌보고 살피며 전개된다. 영화는 진행과정에 적잖은 난관이 있음을 슬쩍 내비치며 시동을 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