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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우리 아버지가 어제 풀 지러 갔다. 풀을 묶을 때 벌벌 떨렸다고 한다. 풀을 다 묶고 나서 지고 오다가 성춘네 집 언덕 위에 쉬다가 일어서는데 뒤에 있는 돌멩이에 받혀서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풀하고 굴러 내려와서 도랑 바닥에 떨어졌다. 짐도 등때기에 지고 있었다. 웬 사람이 뛰어와서 아버지를 일으켰다. 앉아서 헐떡헐떡하며 숨도 오래 있다 쉬고 했다 한다. 내가 거기 가서 그 높은 곳을 쳐다보고 울었다. 안동 대곡분교 3년 김규필, 1969년, 시집 , 양철북 아비가 돌부리에 걸려 중심을 잃고 휘우뚱 기울어졌다. 시를 쓴 아이는 풀 죽은 아비가 마음에 걸려 그가 고꾸라진 곳을 부러 찾아가 운다. 그들이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고 주저앉은 지점에서 나도 호흡을 고르며 잠시 쉰다. 엊그제 입동이 지났다. 낮..

1. 오늘 아침 기온 18도. 벌써 다 지난 일이지만, 소낙성 강수 잦은 여름이었다. 처음엔 여름 가뭄 씻는 그 빗소리 반가워 한밤중에도 깨어있었지. 얼음땡 하는 아이처럼 앉아 혼자 있는 시간이 위로가 되었어. 그 시간도 차츰 지나니 나머지 비는 골머리 앓는 홍수일 뿐이고, 한 해 농사 망치는 재난으로 바뀌더라. 비 오시길 기다리다 해갈 되면 비가 멈추길 기다리는 변덕은 여전히 오락가락. 아무 데도 가기 싫은 아침인데 날씨가 헤벌쭉 웃으며 지랄이네. 2. 어제 운동량이 지나쳤는지 팔다리가 뻐근하고 뼈마디 저리는데, 날씨가 저 모양이라 쉬고 싶은 몸 따로 나다니려는 생각 따로 마음이 어수선하다. 일단 오전에는 서재에서 소설 을 읽으며 페이지 넘기듯 간간이 뒤척여야지. 김훈 씨의 글은 미문이지만 기름지지는 ..

엄마가 늦은 밤 단톡방에 "ㄷ" 한 글자를 남기셨다. 실수였다. 얼마 후 카톡을 열어본 며느님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재치로 "ㄹ"을 남기고, 고3 조카도 공부하다 말고 슬며시 "ㅁ"을, 중딩 조카는 살포시 "ㅂ"을 달았다. 말하는 족족 배꼽 웃음을 피우는 재주를 가진 막내아들은 그들로부터 먼 데서 "ㅅ"을, 나는 뒤늦게 전화로 엄마 안부를 확인하고 "ㅇ"을 내밀었다. 날이 밝으면 또 엄마의 자식임을 낱낱이 드러내는 낱소리가 이어지겠지.

"안물안궁". 그러니까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시겠지만, 이사했습니다. 미리 계획한 이삿날이 토요일이어서 어제 이전 신청을 했습니다. "지금 주문이 밀려 있으니 조금 기다리세요." 라고 할 줄 알았는데 웬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로켓배송하듯 불과 5분 만에 이전 완료 메일이 왔네요. 인스턴트 메신저에서 '대화창 나가기'하면 관계가 끝나듯 "DAUM" 포털과의 결별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블로그 주소는 https://mistymemorys.tistory.com/ 바뀌었습니다. 기존 주소와 닉네임은 사용 불가였어요. 새 닉네임은 "레니에"입니다. 로맹 가리의 소설 에 나오는 약간 덜떨어진 남자 이름입니다. 그는 번잡한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카페를 차리고 열정과 허무 사이에서 허송세월 하다가 어느..

"원균이라는 사람은 원래 거칠고 사나운 하나의 무지한 위인으로서 당초 이순신(李舜臣)과 공로 다툼을 하면서 백방으로 상대를 모함하여 결국 이순신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일격에 적을 섬멸할 듯 큰소리를 쳤으나 지혜가 고갈되어 군사가 패하자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와 사졸들이 모두 어육(魚肉)이 되게 만들었으니 그때 그 죄를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한산에서 한 번 패하자 뒤이어 호남(湖南)이 함몰되었고 호남이 함몰되고서는 나랏일이 다시 어찌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시사를 목도하건대 가슴이 찢어지고 뼈가 녹으려 한다."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년) 1. 우리 역사상 최악의 빌런을 꼽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인 '원균'과 '명성황후'. 그들을 옹호하거나 비호하는 정신..

누가 보면 사는 낙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처럼 연애를 하지. 이런 거라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반문하듯이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침침한 눈으로 책을 끼고 살다가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의 '매버릭'이 36년 만에 살아 돌아왔다. 오매불망 기다린 너무너무너무 전형적인 오락영화다. 세월의 간극이 고스란히 얼굴에 남은 '매버릭'.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의 콜사인이자 영화의 부제, 혀 꼬부라진 영어로 "매버릭(maverick)"은 개성이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을 일컫는다. 고집불통 매버릭은 여전히 삐딱하다. 전투기는 F-14 톰캣에서 F-18 슈퍼호넷으로 바뀌었지만 그가 주로 타는 것은 삐딱선이다. 세월 참 빠르다. 매버릭과 내가 "자, 인생아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라고 호기를 부..

1. [어떤 산수] 인심 써서 세전 연봉 3000만 원이라 치자. 그 저임금 노동자의 연봉이 불황과 구조조정을 이유로 30% 삭감되었다면, 연봉은 3000-900=2100. 만약에 업황이 호전되어 연봉 2100 노동자로 전락한 그가 임금 30% 인상 요구를 관철한다면, 2100+630= 2730. 수년 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빼고도 한 사람의 연봉은 3,000에서 2,730으로 10% 가까이 줄었다. 삭감과 인상 산식에 공통 적용한 숫자 30%. 그러나 손에 쥐는 결괏값은 판이하다. 2. [이념병을 앓는 조선일보가 정신을 잃고 중얼거리는 말]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사태가 끝났다. 노조의 임금 30% 인상 요구는 고작 4.5% 선에서 합의됐다. 조선일보는 "임금 4.5% 더 받자고 8100억 ..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밤낮없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하루가 멀다고 서로 격렬한 말다툼을 벌이거나, 눈을 까뒤집고 호통을 치다가 마침내 뺨따귀를 사정없이 올려붙이고 머리칼이나 멱살을 움켜잡고 싸운다. 그러다가 꺼억꺼억 운다. 맛을 돋우기 위해 짜고 맵고 쓰고 시고 단 양념으로 버무리고, 지나치다 싶게 차거나 뜨거운 국물 음식 같은 빤한 전개가 비릿하고 들척지근한 재료를 개운하게 하고 더부룩하던 속을 풀 때가 있지만, 소화기관 스트레스 등으로 거북하여 부러 피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영화는 잠풍 같다. '오즈 야스지로'나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처럼 구성 규모가 작고 감정이 차근히 가라앉아 잠잠하다. 영화는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삼아 자기..

1. 놀이 삼아 사진을 찍었다. 순간을 길게 보는 재미를 즐겼다. 그 취미는 신이 나서 뛰어들던 돈벌이만큼이나 삶을 가뿐하게 굴리는 열량이었다. 다음 블로그가 사라질 시간이 다가온다. 셧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풍경을 보며 있는 것 모두 본래 없던 것이었다고 느꼈다. 그럴듯한 포장지 빈번히 쓰레기가 되어도, 블로그 있어 여름비 마음에 젖어들듯 메마른 틈새를 메꿨다. 2. 바짓단 다 젖도록 쏟아붓던 비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한 이튿날, 슈퍼문 뜬대서 오밤중에 달마중하였다. 세상 물정에 컴컴한 설익은 사람 머리 위로 꾸김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천진난만한 얼굴이 쌩긋이 웃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온 노래 들으며 세상의 복잡 미묘함 속에 떠도는 당신과 나의 위치를 가늠하다가 연..

1. 애플티비로 "파친코"를 보았다. 보다 제작비를 4배 정도 쏟아부었다는데 역시나 재능과 자본이 결합할 때 볼만한 결과물이 나온다. 나는 굵직한 줄기보다는 드라마가 소설에서 인상적이던 장면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했다. 2. 일테면 '양진'이 딸의 결혼예배가 끝나자마자 선자 부부에게 하얀 맨쌀밥을 밥그릇 미어지게 담아 먹이기 위해 시장 쌀가게로 내달려 쌀 한 봉지에 매달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소설은 그 장면으로 일제강점기의 수탈을 곱씹으며,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 생계와 생존에 연관되어 응어리진 한(恨), 그리고 부모 됨의 기쁨과 슬픔을 그렸다. 3. 지금은 김치밖에 모르던 시절이 아니고 외려 흰쌀밥이 푸대접 받는 시대다. 사람들은 쌀을 주식으로 한 식단을 덜 선호한다. 쌀밥은 건강을 해치는 그릇된 ..

1. 를 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동명 단편소설은 몇 년 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이번에 다시 들춰봤다. 2. 영화는 진퇴양난에 빠진 사람들을 다독여 회복으로 이끄는 줄거리다. 좀 식상한 듯한 그 모티브를 다룬 영화의 러닝타임이 무려 179분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내가 모르던 배우인 "미우라 토코"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 그녀를 발견한 기쁨이 컸다. 3. 주인이 잘 관리한 빨간색 사브 900(원작에서는 노란색 사브 900 컨버터블)이 정속 주행한다. 상처를 치유하기는 커녕 자기 상처의 진실을 회피하며 침묵을 선택한 어른은 달리고 또 달린다. 상처에서 출발, 혹은 탈출해 회복에 도달하기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두려워서 회피하고 싶은 상황을 피하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가 직면하기까지 우..

1. "파친코"는 올해 들어 손에 잡은 첫 소설인데 술술 잘 읽혔다. 완독 하느라 21시간을 썼다. 하루 4시간씩 투자하면 5일이 걸리는데 흥미로운 작품이라 4일 만에 끝냈다. 2. 시대 순으로 전개한 편년체 형식의 소설은 개인과 가족의 역사를 다루면서 사회사를 포괄한다. 작가는 몹시 험난했던 자이니치의 여정을 재구성하면서 영리하게 다음 장이 궁금하게 만들고, 단 한 문장으로 가슴이 철렁하는 경험(2권 '노아' 관련)을 선사한다. 3. 한국의 지난 100년은 불우했다. 자기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나라와 국민은 우왕좌왕 갈팡질팡했다. 매판과 친일은 우울과 조증처럼 쉽게 구분되지 않았다. 친일과 항일이 대립했고 디아스포라와 동화 정책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했다. 일본 지배세력..
1. 대선이 끝났다. 지역주의와 세대, 젠더 갈라치기가 결국 먹혔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그 혐오의 불길 확산에 유권자들이 거침없이 불쏘시개가 되었다. 2. 조국 씨가 눈에 밟힌다. 조국 일가와 문재인 씨의 앞날은 감정 조절, 사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한 맹수의 아가리에 내던져졌다. 검찰개혁에 나선 정권이 검찰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생각하면 정말 의아하기 짝이 없지만 남 탓하며 손가락질 하는 건 또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3. 정치인 이재명의 진면목을 새삼스레 발견했다. 김동연 씨와의 대담과 정책 연대, 정치 교체를 위한 행보를 지켜봤다. 마지막 유세에서 윤석열 씨를 향해 한 말과 승복 선언은 울림이 컸다. 그는 의외로 성품이 모나지 않고 원만했다. 이번 선거로 그는 위험 인물로 단단히 찍혔다. 그가 부디 ..

1. 뒤축이 해질 대로 해져 바늘과 실로는 꿰매기 힘든 양말을 신은 입성 초라한 사내가 전두환 씨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남자는 제복을 입지 않았는데 군모를 썼고 평상복을 입은 민간인인데 거수경례를 한다. 그의 정체는 애매하지만, 다른 설명이 없어도 남자의 볼품없는 행색으로 현재 신분이 쉽게 식별된다. 그는 한 나라를 손아귀에 쥐고 호사스러운 삶을 살다 간 사람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데, 아이러니한 사진을 보는 내내 웃음으로 환멸과 냉소를 표현하는 블랙코미디를 볼 때처럼 쓴웃음이 나왔다. 괴상하고, 엉뚱하고, 부자연스러운 부조화가 선뜩해서 그로테스크를 느꼈다. 2. 더러는 전두환 식의 삶을 내면화, 표준화하고 살면서 폭군이 완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주군의 삶에 경의와 충성심을 내보인다. 그들은 상위..

다저녁에 부고를 받자마자 장례식장 다녀오는 길. 시속 11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창밖 풍경이 꼭 시절인연처럼 지나간다. 살면서 제철 과일처럼 한창이던 사람 있었고, 또 사람 있었고, 또 사람 있었다. 그 사람들 지금 어떤 모습일까. 옛날 비포장 신작로나 허름한 골목길을 걷다가 빈깡통이 보이면 툭 걷어차던 심심한 심정으로 죽음을 슬쩍 엿보고 왔던 길 되짚어 돌아온다. 한 사람 떠난다고 외로울 사람 이 지구에 몇이나 있을까. 사람에게 너그러운 곳과 박한 곳은 저승일까 이승일까. 한 사람이 떠난 장소는 이전과 얼마큼 다를까. 죽었다 살아난 경우만 기적일까. 살다가 죽는 경우도 이승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불가사의한 기적이 아닐까. 늙고 병든 사람이 죽는 일은 사는 일보다 못할까, 더 나을까를 생각하며 달리는데 지난..
1. 해 나왔다 비 오시고 비 오시다 해 나온다. 올 장마는 늦는다고 하니 지금 본격 장마철이 아닌데 비가 잦다. 손가락 클릭 몇 번으로 사다 먹는 나는 상관없지만 씨를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으며 잘 영글길 바라는 이들은 작황과 수확량을 걱정하며 하늘 보는 일이 잦겠다. 태풍과 우박, 긴 장마 등은 농부의 최선만으로 막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도, 세상도, 하늘도 종잡기 어렵다. 2. 나이 든 사람들은 곧잘 "늙으면 밥심으로 산다"라고 한다. '늙은 사람이 밥을 더 많이 먹는다'며 "헌 섬에 곡식 더 든다"는 속담도 있다. 임명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나 공직 윤리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정치중립을 걷어찬 나이든 고위공직자들도 배가 고픈가 보다. 그들은 자기 권력욕을 문재인 탓으로 돌리며 책임회피로 일관..
1. 좋은 영화나 책을 만나면 늘 그렇지만 영화 "스모크"를 보고 나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주제로 유시민 작가와 이동진 평론가가 대화를 나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2. 아마도 그들의 사유는 싱싱하게 빛나는 오월 같겠지. 어떤 감상은 밝고 찬란한 기운을 향해 벙근 목련 같아서 나 혼자 싱그레 웃을 테고, 어떤 해석은 무성한 여름 같을 것이며, 어떤 관점은 단순 명쾌해서 무릎을 탁 칠 거야. 또 어떤 대목에선 싸늘한 늦가을 밤공기처럼 서늘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찬바람이 일겠지. 그러다가 그 냉기를 거두는 모닥불 온기 같은 훈훈한 위로도 잊지 않고 보탤 테고. 3. 진부한 세상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들의 성격은 원만하지 않고 까탈스러울 거야. 취향도 분명 별스러울 두 사람은 작품의 차이..

드물게 좋은 영화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지난주에 본 같은 영화가 그렇다. 영화 는 도입부부터 나를 홀리고 꼬시다가 몸이 풀리면 빌드업을 하고 마침내 역전골 같은 펀치 라인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빽빽한 여백을 선명하게 적어놓은 시처럼 자유로운 상상을 부추겼다. 그런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휘발되지 않은 채 마음에서 살아 숨을 쉰다. 뭐랄까, 곤히 잠든 강아지의 다스운 체온과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는데 강아지가 슬그머니 몸을 쭉 펴며 기지개 켤 때 느끼는 기쁨 같고, 건조기에서 막 나온 빨래에 남은 따스한 온기 같았다. '오기'는 매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조막만한 자기 가게 반대편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는 그 일을 별 회의 없이 계속한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사람들이 아..
어버이날 엄마 보러 다녀왔다가 몸살 앓았다. 이틀 동안 잠을 거의 못 자서 피로가 누적됐나 보다. 몸 상태가 완전 메롱이었는데 삭신이 쑤시고 맥이 풀려 물먹은 솜처럼 축 처졌다. 그 덕분에 "잠들기 글렀으니 책이나 볼까" 하는 생각이 끼어들 새 없이 잠은 푹 잤다. 돈 아끼듯 몸을 아껴야 하는 나이인가. 여행 못 가 몸살이 나는 때가 있는데 웬걸, 마음을 따라잡기엔 체력이 달린다.

"춥고 황량한 우주를 향해 나아가려면 웅장한 설계도 같은 것은 잊어야 한다. 입자에게는 목적이 없으며, '우주 깊은 곳을 배회하면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궁극의 해답' 같은 것도 없다. 그 대신 특별한 입자 집단이 주관적인 세계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성찰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중에서 나의 조상이 내 몸에 새겨 놓은 유전자 덕분에 나는 종종 일탈을 꿈꾼다. 현재 누리는 삶이 안온하고 익숙하며 일상이 지나치게 확실해서 외려 불확실하거나 미묘한 곳으로 떠나는 때가 있다. 바람 한점 없는 따뜻한 날씨 같은 풍요 속에도 고달픈 부분이 있어서 그 평범한 생활로부터 나를 소외하며 집이 아닌 노지나 호텔로 향한다. 나는 그렇게 살도록 생겨 먹은 사람이지만 내가 직면한 현실은 나의 탈출을 쉽게 허락하..